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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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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엔 고려 조선의 빼어난 천문관측 사례를 더듬어보았습니다. 1572년의 ‘티코 초신성’과 1604년의 ‘케플러 초신성’ 등 밤하늘의 우주쇼를 조선의 천문학자들도 목격했으며,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 〈석담일기〉 등에 그 관측기록을 담았음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1604년 요하네스 케플러가 관측한 초신성의 경우 조선천문관리들이 4일이나 먼저 관측했습니다. 1572년 서양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가 목격한 초신성의 경우 똑같은 날짜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흥미로운 천문학 논문이 실렸습니다. 만고의 성군이라는 세종의 치세에 관측한 신성폭발 기록을 제대로 규명한 것입니다.미국·영국·폴란드 등 6개국 공동연구진은 지난해 칠레에서 전갈자리 꼬리부분에 있는 한 별을 둘러싼 가스구름을 관측했습니다. 공동연구진은 이 가스구름을 연구하면서 1437년(세종 19년) 음력 2월5일 “미수(전갈자리 별자리)에서 객성이 14일간이나 나타났다”는 〈세종실록〉 기록을 검토했
 술을 좋아하십니까. 그것도 소주 한 잔, 어떻습니까. 요즘 저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흥미로운 통계가 있네요. 지난해, 즉 2016년 성인 1인당 1년에 85병의 소주를 마셨다는군요. 전국적으로 1년에 팔린 소주가 무려 34억병이라니 대한민국은 가히 소주공화국이라 할 수 있겠네요. 궁금증이 생깁니다. 소주는 과연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국민술’이 되었을까요. 듣자하니 소주의 고향은 대한민국도, 중국도 아닌 메소포타미아 수메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 1948년 6월 7일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 위원 30명은 무기명 투표 끝에 압도적인 표차로 ‘대한민국’을 국호로 의결했습니다. 그러나 ‘대한’이 국호로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1897년 고종(사진)이 황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大韓)’이라 했습니다. ‘조선은 원래 중국의 책봉을 받은 기자조선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명나라 황제가 낙점해준 국호
요즘 자식을 키워 대학 보내고, 취직시키고, 결혼까지 시키려면 얼마나 들까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렇다면 조상들은 어땠을까요.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혼인할 때 재물없이 보내는 것이 예법”이라는 고구려 시대 기록도 있지만 어디 그렇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그 유명한 평강공주의 예가 있습니다. 바보 온달과 혼인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가출한 평강공주의 팔꿈치에 금팔찌 수십개가 걸려있었습니다. 평강공주가 훔쳐
사내초(寺內草)를 아십니까. 청와대 미남석불을 아십니까.해방된 지 무려 72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입니다. 그런데 이 사내초나 미남석불에 식민지 조선의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1852~1919)’의 체취가 남아있다는 것이 심각합니다. 사내초는 데라우치의 일본어(사내·寺內) 발음이지요. 말하자면 데라우치 꽃이고 학명도 여전히 ‘데라우치아(Terauchia)’로 시작됩니다. ‘평양지모’니 ‘조선화관
 가야국 출신 음악가인 우륵이 있습니다. 나라가 멸망 직전에 놓이자 신라로 망명한 인물입니다. 우륵의 음악에 빠진 신라 진흥왕은 전도 유망한 음악가 3명을 우륵에게 보냈습니다. 말하자면 가야 출신 연예기획자인 우륵에게 연습생 3명을 보낸 것입니다. 우륵은 오디션을 통해 3명의 재능을 파악한 뒤 노래 담당, 춤 담당, 악기 담당 등으로 맹연습을 시켰습니다. 치열한 연습을 통해 신라 그룹이 탄생했습니다. 우륵은 진흥왕 앞에서 자신이
겸재 정선(1676~1759)을 향한 평가는 극찬 일색입니다.“겸재는…조선중화사상에 따라…조선고유색을 현양한 진경문화를 주도한…진경산수화법의 창시자다.” 심지어 ‘민족적 자존심을 지킨 화성(畵聖)으로 추앙해야 할 인물’로도 꼽힙니다. 신격화도 이런 신격화가 없습니다. 무오류의 위인전을 읽는 듯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합니다. 지나친 신봉은 외려 겸재의 진정한 가치를 흐리게 하지는 않을까요.장진성 서울대교수(고고미술사학과
“개 혀?” 충청도 사투리가 웃음을 자아냅니다. “보신탕(개고기) 먹을 줄 아느냐”는 질문이지요, ‘개 혀?’의 복수형도 있답니다. ‘개들 혀?’랍니다. 그런데 이쯤해서 충북 사람들이 딴죽을 겁니다. ‘개 혀?’는 엄밀히 말해 충청남도 사투리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충북에서는 뭐라고 하느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나옵니다. “개 햐?” 물론 우스갯소리지요. 사실 개고기는 동양만의 식습관은 아니었습니다. 1926년 1월 8일 동아일
 “일본의 특사 다나카 자작(궁내대신)의 흉계로…무기를 가진 일본인들이 경천사탑을 급습해서 탑을 해체하여 실어갔다고 한다.…”1907년 3월7일 〈대한매일신보〉는 해괴망측한 단독보도가 씁니다. 1907년 1월 대한제국을 방문했던 일본의 궁내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田中光顯·1843~1939)가 경천사 10층석탑을 무단으로 해체해서 일본으로 반출했다는 충격적인 기사였습니다. 이 대리석 탑은 높이만 13m에 이르는 섬세한 부조의
 인조반정 세력이 광해군을 쫓아낸 명분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폐모살제였습니다.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하고 10년간이나 유폐시킨 죄와 8살짜리 이복동생(영창대군)을 죽인 죄 등을 물었습니다. 또하나는 임진왜란으로 불탄 궁궐을 중수하면서 백성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죄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명나라에 대한 은혜를 배반하고 오랑캐(후금)와 화친한 죄였습니다. 세가지 죄상 중 첫번째, 즉 폐모살제는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큰
 1623년 5월 22일 강화도 교동에서 깜짝 놀랄 사건이 일어납니다. 인조반정으로 쫓겨나 위리안치된 광해군의 아들(폐세자 이질)이 땅굴을 파서 심야탈주극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사건입니다. 폐세자 부부가 26일간 가위와 인두로 파낸 땅굴의 길이는 70자, 즉 21m였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조선판 쇼생크탈출이었습니다. 폐세자는 무사히 탈출했지만 그만 길을 잃고 헤매다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조정은 벌집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혔습
지난 주엔 1577년 8~11월 사이 약 100일간 발행된 민간인쇄신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러나 이 100일간의 신문은 활자로 대량 인쇄되어 구독자인 사대부들에게 유료로 배포된 조보였습니다. 그런데 문헌기록을 보면 조선조 중종부터 조보가 발행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선조시대에 잠깐 발행된 민간인쇄 신문과는 달리 승정원 주서가 편집한 조보내용을 베껴서 각 관청에 배포한 것입니다. 이런 조보에도 깜짝 놀랄만한 내용이 많이 실려
 1577년 11월28일 선조가 분기탱천합니다. “어떤 자가 내 허락 없이 조보(조선시대 관보)를 발행했는가. 인쇄·배포한 자와 그것을 허가해준 자 모두를 색출하라”는 명이었습니다. 서슬 퍼런 선조의 명에 따라 30여 명의 조보인쇄발행업자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유배형을 받았습니다. 그해 8월부터 약 100일간 민간인이 인쇄·발행·배포한 조보는 약 100일 만에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조선시대 조보는 단순히 행정소식만 전하지
 중구삭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말은 쇠(金)를 녹인다는 사자성어입니다. 흔히들 유언비어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말이고, 여론의 무서움을 시사하는 성어입니다. 어쨌든 말(言)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는 “말(舌)은 네 마리의 말(馬)이 끈 마차(駟)보다 빠르다”(駟不及舌)는 성어가 일러줍니다. 천하의 성인인 공자도 제자앞에서 농담 한마디 잘못했다가 곤욕을 치렀습니다. 정색하고 따지는 제자앞에서 “농담이야! 농담!”하며 쩔쩔
 1970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아주 싼값에 구입한 청동유물의 녹을 닦았더니 흥미로운 문양이 나타났습니다. 한면에는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있었고, 다른 면에는 사람 3명이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와 나뭇가지는 ‘솟대’를 연상시켰습니다. 문제는 다른 면에 새겨진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해석가능했습니다. 토기항아리에 곡식을 저장하는 이는 여인 같아보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괭이를 들고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아! 지겨운 학교, 언제나 쉬려나.’ 기원전 2000년 무렵 어느 수메르 학생이 설형문자로 점토판에 새긴 넋두리입니다. 학교생활,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그랬을까요. 수메르인이 새겨둔 점포판을 보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교사가 지극히 산만한 학생을 체벌하고, 체벌당한 학생은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우리 선생님에게 좀 뇌물 좀 줍시다”라 했습니다. 자식이 뭐라고, 아버지는 자식의 호소를 듣고 교사를 초청해서 이른바 촌지
 얼마전 경주 월성의 성벽 기단부에서 인골 2기가 발견됐습니다. 그저 휩쓸려 들어가 묻힌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람제사의 희생물로 그곳에 묻힌 것입니다. 성벽을 튼튼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제사상을 차렸고, 두사람이 희생물이 된 것이지요. 인골이 발견된 성벽의 연대가 5세기 무렵이었으니까 1500년 전 신라의 상황이네요. 이게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00년에는 경주의 한 우물에서 10살짜리 어린아이 인골이 거꾸로 박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물 박물관이 있습니다. 기원전 6000~기원전 2000년 사이 무려 4000년간 신석기인들의 삶을 복원해볼 수 있는 부산 동삼동 패총유적입니다. 패총이란 조개무지, 즉 신석기인들이 먹고 버린 조개들의 무덤입니다. 석회질로 된 조개껍데기는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바꾸기 때문에 패총 안에 들어있는 유구와 유물들이 잘 썩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삼동 패총에서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유물들이
 김천택의 가곡집 〈청구영언〉 하면 어떤 노래가 생각나십니까.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와 고려 충신 정몽주의 ‘단심가’ 같은 고고한 노래가 떠오르겠지요. 뭐 국어책에서 배웠으니 당연히 그럴 겁니다. 옛 성현들의 노래를 한글로 소개했다는 점에서 〈청구영언〉의 가치는 필설로 다할 수 없지요. 그런데 이 〈청구영언〉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노래들이 잇달아 발견됩니다. 이른바 ‘만횡청류’ 노래인데요. 시쳇말로 ‘남녀상열지사’ 노래,
 진흥왕순수비. 한국사를 배울 때 놓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삼국 가운데 약소국이던 신라가 진흥왕 때 낙동강 서쪽의 가야세력을 정복하고 북쪽으로는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유역을 차지한 뒤 함경도 이원지방까지 진출한 다음 새롭게 개척한 영토를 순행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으로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순수비는 창녕비ㆍ북한산비ㆍ마운령비ㆍ황초령비 등 4곳입니다. 한결같이 개척한 새로운 영토 중에서도 요충지에 속하는 지점에
 최근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인 ‘야마나카 상회’를 다룬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야마나카 상회를 거쳐 판매된 석조 및 도자 문화재의 도록 사진과 관련 기록을 정리한 논문입니다. 야마나카 상회 관련 서적을 들춰보니 간송 전형필 선생과 몇차례 맞대결을 벌인 기록이 있었습니다. 논문이 나온 김에 간송과 야마나카 상회가 펼친 문화재 전쟁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물론 간송도 조선에서 알아주는 부자였지만 당대 글로벌 거대자본이던
 ‘충청판 광개토대왕비’ 이야기를 아십니까. 1979년 충북의 어느 향토연구회 답사모임 사람들이 발견한 고구려비입니다. 이름하여 중원 고구려비입니다.처음에는 신라 진흥왕이 영토를 개척한 기념으로 세운 순수비인줄 알았답니다. 그러나 당대 최고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어 해독한 결과 놀라운 내용임이 밝혀졌습니다. 고구려가 신라를 형제국으로 삼았으며, 고구려왕이 신라왕과 귀족들에게 의복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게다가 고구려군
 우리나라 보물과 관련된 기막힌 이야기를 하려합니다.1933년 마을주민이 밭을 갈다가 발견한 경주 노서리 215번지 유물입니다. 그러나 주민이 수습한 것은 반쪽이었습니다. 신고를 받고 현장을 찾은 일본인 학자 아리미쓰가 나머지 반쪽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마을주민이 찾은 반쪽은 서울(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나머지 반쪽은 도쿄(국립제실박물관)으로 갔습니다.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거죠. 왜 그렇게 흩어진 것일까요. 1965년 한일
 이번 주는 27만 년 전의 세계로 되돌아가겠습니다.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선사시대의 이야기입니다. 해마다 5월이면 이곳에서 구석기축제가 열립니다. 올해는 5월3일부터 7일까지 열린답니다. 27만 년 전 구석기 시대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고, 선사박물관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되어 있으니 한번 참여해보시기 바랍니다.궁금증이 생기실 겁니다. 왜 하필 27만 년 전 세계냐. 그걸 어떻게 아느냐. 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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